나를 돌보는 식사 – 마음까지 채우는 슬로우 레시피
나는 언제 내 밥을 따뜻하게 먹어봤지?
언젠가 아침을 거른 채 회사에 출근해, 점심시간도 놓치고 퇴근 후에는 아이 저녁 챙기느라 식은 국에 밥 말아 대충 넘긴 적이 있어요. 그날 하루를 돌아보며 문득 든 생각은 이거였죠.
"나는 오늘도 내 밥을 먹지 못했다."
워킹맘의 하루는 늘 급합니다. 출근 준비, 아이 돌봄, 업무, 집안일… 하루를 겨우 버티듯 살아가며 식사라는 이름으로 허기를 채우는 일만 반복하게 되죠.
하지만 어느 순간, 그게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어요. 내가 나를 돌보지 않는데, 과연 누굴 챙길 수 있을까? 그때부터는 아주 작은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습니다. 직접 요리를 한다기보다, **‘먹는 시간’만큼은 나를 위한 루틴**으로 바꾸기로요.
그렇게 시작된 저만의 슬로우 레시피들. 지금부터 소개해드릴게요. 시간은 짧지만, 마음은 천천히 챙기는 식사들이에요.
1. 따뜻한 감자스프 – 위로가 필요할 때
감자가 마트에서 3개에 2,000원이었어요.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죠. 버터, 양파, 우유만 있으면 카페에서 먹는 것 같은 부드러운 감자스프가 가능하니까요.
퇴근 후 지친 하루, 속은 메스껍고 입맛이 없을 때 그릇에 담긴 감자스프를 떠먹으면 ‘돌봄 받는 느낌’이 진짜 들어요. 그날 하루를 조금은 괜찮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는 음식이에요.
포인트 팁: 남은 스프는 냉장고에 넣고 다음날 아침에도 따뜻하게 데워 먹을 수 있어요. 바게트 한 조각과 함께하면 그 자체로 브런치!
2. 현미밥 + 계란장조림 – 기본이 주는 단단함
가끔은 괜히 ‘건강한 거 먹어야지’ 하다가 더 귀찮아지죠. 그럴 땐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.
현미밥 한 공기, 계란장조림 하나면 충분합니다. 짭조름한 달걀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비워내는 그 단순함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요.
저는 아이가 잘 때 가끔 혼자 이 조합으로 밥을 먹어요. 소리도 조용하고, 마음도 고요해지고, 나를 위한 밥 한 끼를 먹는다는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거든요.
3. 토마토 바질 오픈토스트 – 아침 10분의 변화
출근 전 10분. 커피머신이 우는 동안 토스트기를 켜고 방울토마토를 자릅니다. 그 짧은 시간이 **아침 전체의 결을 다르게** 해줘요.
저는 매일 똑같은 식빵을 그냥 굽는 게 아니라, 기분에 따라 위에 얹는 재료를 바꿔요. 토마토 바질, 아보카도, 달걀후라이, 심지어는 남은 고구마까지.
이건 **식사를 넘은 감성 활동**이에요. '내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고 싶은가?'에 대한 대답이거든요.
4. 나만의 감성 라면 – 피로를 품은 힐링 한 그릇
야근 후, 애 재우고 뒤늦은 저녁. 주방에 불을 켜기조차 싫은 밤이 있어요.
그럴 땐 ‘라면’을 먹되, **라면을 의식 있게 먹습니다.** 그릇을 고르고, 나만의 방식대로 물을 재고, 고명을 올리고, 계란 하나 살짝 익힌 후 조용히 스탠드 불 아래에서 한 그릇.
그렇게 먹으면 라면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“나도 오늘 수고했다”는 작고 단단한 의식이 됩니다.
5. 일요일 브런치 – 온전한 나를 위한 상차림
일요일 아침, 온 가족이 아직 자고 있는 시간. 그때만큼은 조용히 나를 위한 상을 차립니다.
오믈렛, 그릭요거트, 샐러드, 커피.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 30분은 엄마가 아니라 ‘나’로 살아가는 시간이에요.
창문 열고 음악 틀고, 책 한 권 곁에 놓으면 그것만으로도 **여행을 떠난 기분**이 됩니다.
6. 야근 후 초간단 컵비빔밥 – 현실과 타협한 감성
야근하고 들어오면 정지된 시간처럼 피곤해요. 이럴 땐 있는 재료로 만들어 먹는 컵비빔밥이 진리예요.
- 전자레인지용 현미밥 1개
- 김가루, 계란후라이, 고추장 or 간장, 참기름
- 종이컵에 층층이 넣고 비벼먹기
이건 요리도 아니지만, 내가 오늘 이 정도는 먹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. 너무 간단하지만, ‘지금 나를 안다’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.
7. 아이와 만드는 감성 간식 – 함께하는 따뜻함
가끔은 아이와 요리하는 시간도 하나의 감성 식사예요. 전자레인지용 단호박, 미니 핫케이크, 과일꼬치 같이 간단한 걸로도 충분해요.
아이와 함께 재료를 자르고, 굽고, 플레이팅 하다 보면 그 시간 자체가 감정 회복의 순간이 됩니다.
먹는 건 그다지 특별하지 않지만, ‘우리가 함께 만들었다’는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.
마무리 – 식사는 생존이 아니라 회복이다
워킹맘에게 식사는 의무가 되기 쉽습니다. 아이 밥, 남편 밥, 도시락, 간식… 그런데 정작 내 밥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.
하지만 이제부터라도, **내 식사는 내가 돌본다**는 다짐으로 작은 루틴을 만들어요. 그게 나를 지켜주는 시작이니까요.
오늘, 당신도 한 끼 정도는 **마음으로 먹어보세요.** 그 한 끼가 감정을 정리해주고, 내일을 살아갈 힘을 아주 작게라도 건네줄 거예요.